18년만에 아내와 찾은 조계산 선암사

2012. 10. 30. 07:35전라남도 견문록/순천 견문록

 

단풍이 깃들었을까? 하고 찾아간 선암사.

10월 하고도 21일이 되었건만 남도땅 고요한 산사엔 아직 단풍이 찾아들지 않았다.

지난 주 부터 단풍찾아 삼만리? 청송 주왕산 주방계곡을 동창들과 흝어보았지만 단풍찾기란 보물찾기보다 어려워 졌다.

건강이 안 좋은 아내의 눈을 호강시켜준다고 호언장담을 한 나들이 길이 되었지만, 선암사, 금전산, 금둔사 세곳을 하루에

다녀보았지만 아직 단풍물든 나무들의 화려한 자태를 볼 수가 없다.

 

오늘 나들이 일정에 선암사는 없었다.

지난 8월에 동창들과 올랐던 순천 금전산을 낙안온천에서 금강암까지 오르며 지난번 가 보지 못한 등로를 올라보고

역시 지난 8월에 가보지 못했던 금전산 금둔사 납월홍매도 구경하고, 낙안읍성에서 열리는 남도 음식문화큰잔치에 들러

아내랑 다양한 남도음식에 대해 눈동냥도 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다음 순천만으로 가서 가을 갈대숲을 걸어 전망대에 올라 순천만의 S라인 황금낙조를 담아볼 생각이었지만

출발이 많이 늦어 순천만과 낙안음식문화축제를 빼고 대신 선암사를 들르게 된 것이다.

 

 

선암사의 문화재관람료는 성인1,500원으로 조계산 건너편 송광사의 3,000원에 비하면 절반값이다.

보여줄 것은 훨씬 더 많은데 문화재관람료는 절반밖에 안되는 것은 선암사의 부처님의 사랑이 깊기때문일 것이다.

 

 

                   모처럼 둘만의 시간에 발걸음이 가벼운 아내.

               두 팔로도 모자라 느티나무 너머로 마음까지 돌아간다.

 

 

시내버스가 들어오는 곳에 있는 부도전.

 

 

화창한 일요일 순천 선암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아마도 선암사에서 조계산 너머 송광사로 넘어가는 등산객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조계산 굴목이재를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태고총림 선암사가 서쪽엔 승보사찰 송광사가 있어

어느쪽 사찰로 들어 조계산을 오르든 또 다른 천년고찰을 만날 수 있으니 조계산을 찾는 산행인들은

도립공원 조계산도 올라보고 선암사와 송광사라는 두 거찰도 만나는 행운을 가지는 것이다.

 

 

계곡의 싸늘한 공기를 먼저 받아서 인지 선암사 계곡의 단풍은 이제 막 들기무렵이다.

이 글을 쓰고 있을 무렵인 27일경이면 이곳 선암사 계곡의 빛깔은 훨씬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

가을이 무르익을 무렵이라 물소리도 낭랑하지만 스잔한 계곡을 더 아름답게 빛낼 단풍이 늦는 통에

정작 마음아픈 것은 내가 아니고 바로 이 계곡일 것이다.

 

 

두번째 부도전의 사층석탑이 눈에 띈다.

1928년에 세워진 화산대사의 부도로 사자 네마리가 탑을 들어올리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또 하나 특이한 비석은 모든 비석이 정면을 바라보는 것과 달리 화산대사 부도 옆의 두번 째 비석은 방향이 다르다.

상월대사의 비로 생애의 대부분을 선암사에서 보낸 상월대사가 입적한 곳은 선암사가 아닌 묘향산 보현사라고 한다.

보현대사가 입적한 후 나온 3과의 사리를 가지고 세 곳에 부도탑을 세웠는데 그 중 한 곳이 생애 대부분을 보낸 선암사이고

부도의 방향도 입적한 보현사 쪽으로 향하게 했다고 한다. 



 

우측길로 접어들면 순천전통야생차 체험관이라고 예전에 왔을 때 안보이던 것이

새로이 선암사로 가는 길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내려오며 들러본다는 것이 선암사 부부싸움에 밀리고 말았다. 

 

 

계곡아래에 두 다리가 마치 형제다리처럼 서로 마주보고 있다.

다리사이로 보이는 것이 보물 제400호인 선암사 승선교이다.

그렇지만 승선교앞에 있는 무지개다리도 승선교만큼 아름답다.

 

 

모처럼 나선 단풍놀이라 신이난 옆지기는 연신 여기도 찍어보세요, 저기도 찍어 보랑께 라며

사진찍기 좋은 포인트를 연신 까불고 있다. 이렇게 좋은 기분으로 선암사를 내려섰다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승선교 안쪽엔 용머리조각이 빼꼼하게 머리를 내 밀고 있다.

다리를 놓을때 양쪽에서 쌓아올린 돌이 만나는 중간에 멍에석을 끼우는 대신 용머리를 끼워넣었는데

이 석상이 물길을 타고 들어오는 잡귀나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고 한다.

 

 

 

승선교에서 바라본 또 다른 무지개다리

 

 

승선교는 임진왜란 이후 선암사를 중건할 때 가설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1698년(숙종 24) 호암대사(護巖大師)가 관음보살의 시현을 바라며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그 기도가 헛되자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하는데, 이 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

대사는 자기를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圓通殿)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는 한편,

절 입구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세우기 시작하여 6년만에 완공했다고 한다.

 

 

승선교 너머로 보이는 강선루.

아직 아내는 소녀시절 풋풋한 살내음 풍기는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사색깊은 모습이다.

 

 

강선루는 2층 누각으로 여느 절집에 없는 특이한 형태의 누각이다.

대개의 절집이 일주문을 통과하면서 부처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과 달리

선암사는 강선루를 지나면서 부처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강선루(降仙樓)라는 현판으로는 신선들이 내려온 곳이란 뜻으로 보여 정자의 이름으로

쓰면 더 어울릴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일주문 밖 계곡물 구비 돌아가는 곳에 있는 승선교 역시 신선이 올라간 곳이란 뜻으로 두 곳을 합치면

신선이 오르내린 곳이란 뜻이 될 것이다.

선암사가 875년 (신라 헌강왕5)도선국사가 창건하며 신선이 내린 바위가 있는 곳이라 선암사라 이름 지었다는 

설도 있기에 일주문밖에 승선교와 강선루를 배치하여 계곡과 어울리게 하고 강선루 아래로 지나는 계곡의 청량수에

속세의 번뇌를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뜻도 있을 것이다.

 

 

삼나무 숲도 지척에 있어 강선루 청량수로 씻어낸 마음에 상큼한 피톤치드향을 뿌려본다.

 

 

연못의 이름이 삼인당(三印塘)이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 46호로 862년에 도선이 축조한 장타원형의 연못이다.

연못안에 있는 섬은 '자이이타'이고 밖은 자가각타라고 한다.

삼인이라함은 제해무상인, 제법무아인, 열반적정인의 불교사상을 말한다고 하며

불교사상을 배경으로 한 독특한 연못으로 절집에서는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부터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야 하는 하마비가 일주문 앞 언덕에 있지만

 일주문의 멋에 반하여 걷다 보면 놓치기 쉽상이다.

 

 

매표소에서 내려 일주문앞까지 오리정도밖에 되질 않지만 좌측으로는 신선이 오르내린 선암사계곡이

우측으로는 조계산 원시림 자락이 사위를 가려 그 깊이를 알 수가 없게 만들정도로 우거진 숲이 이어진다.

 

 

조계산 선암사 일주문은 여느 절집과 상당히 다르다.

대개의 일주문이 단독으로 서 있는 것 보다 사찰의 경계를 이루는 담장을 좌우로 거느리고

높다란 계단위에 우뚝 솟아있다.

 

 

범종루엔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라는 현판이 선명하게 붙어 있어 태고종의 유일의 총림임을 빛내고 있다.

여기서 총림이란 선원, 강원, 율원 등을 모두 갖춘 사찰로 젊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라 공부하는 스님들이 있는

사찰을 말하여 조계종에 (조계, 영축, 가야, 덕숭, 고불)등 다섯 총림이 있고 태고종의 총림으로는 선암사가 유일하다.

 

 

육조고사는 대웅전 바로 건너편 건물로 만세루이다.

구운몽의 저자 서포 김만중의 부친인 우차 김익겸의 글씨로 육조고사란 달마대사가 살았던 육조시대부터 있던 사찰이란 뜻.

 

 

                범종각은 따로이 서 있고.

 

 

범종루에 불전사물인 목어, 운판, 범종, 법고 등이 있다.

 

 

대웅전은 보물 1311호로  뜨락은 상당히 아담하다.

대개의 사찰이 대웅전앞 뜨락이 광활한 것에 비하면 선암사 대웅전 앞 뜨락은 동탑과 서탑으로 불리우는 보물 제 395호인

삼층석탑 두개와 당간지주 4개소가 꽉 들어차 보일 정도로 협소하여 답답해 보이지만 의외로 정신이 집중되는 면모도 있다.

 

암사의 대웅전은 항상 선암사와 흥망을 함께한 건물로 정유재란때 소실된 것을 1660년에 중수하였고, 1759년 화재로

다시 소실되었다가 1760년에 다시 중건, 1823년 화재도 또 다시 소실, 1824년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조계종 사찰들이 주불을 중심으로 좌우 협시불을 두는 것에 비해 태고종 사찰들은 주불만 대웅전에 모시는 것 같다.

영산회상도를 후불탱화로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다.

 

 

                 선암사 비사리구시

 

 

지장전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로 그 좌우로 명부의 10대왕이 모셔져 있다.

 

 

                ㅎ 아직까지 옆지기는 기분이 좋다.

                

 

대웅전 뒤로는 조사전, 불조전, 팔상전이 나란히 서 있다.

 

 

불조전

 

 

대개 사찰의 불조전에는 사찰의 개창자나 중창자, 중수자와 역대 유명한 선조사 스님들의 진영이 모셔져 있으나

선암사의 불조전은 과거 7불과 미래 53불 등 60분의 부처를 모시고 있다.

 

 

팔상전

 

 

팔상전에는 석가모니의 전생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 일대기를 압축하여 여덟장면의 그림으로 표현한 팔상도를 모시고

아미타 부처를 주존으로 화엄탱화 좌우로 팔상도를 봉안했다.

 

 

조사당은 중국에 선을 전한 달마대사를 시작으로 육조 혜능, 마조 도일 등의 중국 5대 선사의 진영과

태고종의 증조인 태고보우국사, 선암사의 선을 널리 알린 침굉현번선사 진영을 모시고 있다.

 

 

각종 경전을 보관한 장경각.

 

 

원통전 옆의 첨성각은 원통각을 관리하는 스님이 사는 곳이다.

이 건물도 1780년에 중창되었고 1860년에 중수되었다고 하며 별을 보는 전각이라는 의미로

스님들이 별을 보는 새벽에 일어나 수행을 열심히 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선암사에서 제일 아름다운 건물인 원통각

관세음보살을 모셔 관음전이라고 하며 1698년에 중창한 것을 1759년 화재로 소실,1761년에 재중창하였고

2번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원통전뒤의 매화나무는 그 유명한 선암사 백매화로 천연기념물 제488호이다.

선암사 매화는 원통전과 각황전을 따라 운수암으로 오르는 담길에 50주가 심어져 있고,

지금 보이는 백매화와 각황전 담길의 홍매화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천불전앞의 600년된 와송과 같은 시기에 심어졌다고 하며 매화꽃 필무렵이면 백매화와 홍매화의 향에 취해보고자

수많은 상춘객들이 선암사를 방문한다고 한다.

 

 

 

호남제일선원이라는 문각을 지나면 응진당을 중심으로 좌측으로 달마전과 벽안당, 우측으로 진영각과 미타전이 있으며

응진당 뒤로 산식각이 있다. 

 

 

또다른 선계인것처럼 담장으로 둘러쌓인 응진당

 

 

응진당엔 삼존불과 16나한을 모시고 있으며 삼존불로는 주불로 석가모니와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이 협시봉안되어있다.

 

 

 

암사의 선방으로 쓰이는 달마전

 

 

스님들의 요사로 쓰이는 벽안당

 

 

진영당은 선암사의 중창자나 크게 깨닳은 스님들의 진영을 모셔놓은 곳. 

 

 

 

승방으로 쓰이는 미타전

 

 

응진당 뒤편에 있는 산신각

 

 

 

 

조사전 옆의 연못

 

 

 

                회초리를 하나 들고 있는 표정이 금새라도 맴매할 것 같다.

               사실 모처럼 둘이 단촐하게 200리 길을 달려 선암사까지 나들이 나왔는데 깊은 대화는 못할 망정

               아예 냅두고 열심히 당우들 사진만 찍고 돌아다니니..ㅉㅉ 옆지기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것도 아니고..

               지천 들어도 싸지...그저 할랑할랑 카메라만 들고 돌아 다녔지 여인을 위한 배려는 앙끗도 않했으니...

               그저 욕먹어도 싸지... 그래도 찍을 것은 찍어야지..

 

 

 

대웅전을 관리하는 스님들이 거처하는 응향각

 

 

사찰 한 켠에 있는 삼성각은 칠성, 독성, 산신을 모시는 전각으로

불교가 토착화 되면서 토속신앙을 배려한 새로운 신앙형태이다.

 

 

 

삼성각앞에 있는 600년된 와송

하늘을 향해 가지를 벌리지 못하고 바닥을 기며 살아가지만 거기에서 겸손을 배운다.

 

 

 

행자들의 교육과 생활을 하는 설선당

 

 

 

 

절의 대중이 모여 공양을 하는 곳인 적묵당

절에서는 공양간, 뒷간, 세면장을 삼묵이라고 하며 이는 공양이나 일을 볼 때 씻을 때는

항상 엄숙해야 한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고 한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 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中 선암사


산강수약(山强水弱)한 선암사의 지세 때문에 화재예방을 위해 영조 37년(1761)에

산 이름을 청량산(淸凉山)으로, 절 이름을 해천사(海泉寺)로 바꾸었던 데서 유래한 해천당은 

절에오는 객승이나 신도들이 묵는 곳이다.

 

 

적묵당앞 배롱나무꽃이 활짝 피는 8월이면 또 다른 멋이 있는 선암사를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아내의 흘기는 눈에도 이토록 예쁜 단풍엔 미안했나 보다

단풍보러 왔으니 단풍으로 마음을 다시 잡을 수밖에...ㅎ

 

 

그래서 애써 단풍을 찾아 아내의 심드렁한 심사도 풀어주고 이제 선암사를 나와 낙안의 진산 금전산으로 간다.

 

 

 

               순천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살면서 연애시절부터 수도 없이 드나들었던 선암사.

               이제 아이들이 다 커서 따라나서질 않기에 둘만의 오붓한 산책길이 되어버렸지만

               순천을 떠나온지 18년만에 걸어본 선암사 길은 무심한 나를 질책하기라도 하듯이

               곱게 물들었을 단풍을 보여주지 않고 다시 오기를 바라고 있다.

               훗날 선암사로 해서 조계산을 넘어 송광사로 넘어가는 산행코스를 잡아 그 바램에

               보답할 것을 약속하며 이만 선암사와 작별을 고하고 금전산 금강암으로 간다.

 

     (글 : 포토뉴스 코리아 simpro) 트위터 ☞ http://twitter.com/huhasim

   지도: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