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과 혜장스님의 우정이 어린 만덕산 백련사

2012. 12. 24. 08:05전라남도 견문록/강진 견문록

 

만덕산 백련사는 1801년 발생한 신유사화에 연루되어 그 해 11월에 강진으로 유배되어 내려온 정약용이 물설고 낯설은 환경에

적응을 못하고, 천주교도 였다는 사실만으로 배척을 받아 강진읍 동문밖 주막집의 방 한 칸에 머물어야 했던 암울했던 시절의

정약용에게는 빛과 소금과 같은 존재로 짠~하고 나타난 절이다.

 

강진으로 유배되어 내려와 주막집 방 한칸을 사의재(四宜齋)라 부르고 자신을 추스리며 지낸지 5년 째 되던 해인 1805년 어느 날,

우울한 마음을 달래고자 우연히 백련사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해남 대흥사의 혜장선사를 만나면서 인생 최대의 전환점을 맞는 정약용. 

첫눈에 정약용의 인품과 학식을 알아 본 혜장선사 역시 인물은 인물을 알아 보고 영웅은 영웅을 알아 보는 법.

 

정약용은 혜장스님을 만나면서 차(茶)에 대해 알게되었고, 혜장스님도 정약용을 만나면서 부터 그의 학식과 인품에 매료되어 스스로

주역 배우기를 청 하였으니 실사구시(實事求是) 실학의 대가 정약용열 살이나 연하였던 혜장스님은 단순히 차나 마시며 친분을

쌓았던 사이가 아니라, 차를 핑계로 정약용은 불심을, 혜장스님실학을 공부하여 서로에게 스승이 된 자리가 되었으며, 훗날 정약용

이 외가인 해남윤씨의 도움으로 다산초당을 얻게된 뒤 오솔길을 따라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오가며 친형제 이상의 우애를 나눈 사이가

되었다.

 

백련사와 다산초당은 정약용과 혜장스님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되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이어서 다음 편인 다산초당에서 하기로 하고

이번 포스팅에서는 백련사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기로 한다.

 

 

 

백련사(白蓮寺)의 본래 이름은 만덕사(萬德寺)이다.

백련사가 있는 산도 만덕산(萬德山)으로 백련사가 창건하기 훨씬 전 부터 이미 만덕산으로 불리웠던 관계로

사찰도 만덕사라 불린 것 같다.

만덕사는 통일신라시대 말기인 839년(문성왕 1)에 무염(無染)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후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폐허가 되어 터만 남아있던 것을 원묘국사 요세가 중창을 하였고, 사찰이름을 만덕사로

다시 부르다가 근래들어 백련사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는데, 그것은 고려 후기인 1211년(희종 7년) 대대적 중창을 이끈

원묘국사 요세가 주도하여 일어난 불교 개혁 운동인 백련결사가 만덕사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세는 고승 지눌(知訥)과 함께 송광사에 머물다가 1208년 천태종의 묘의(妙義)를 얻고, 강진에 살고 있던 최표(崔彪) 등의 권유로

만덕산에 있는 만덕사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으며 그의 제자 원영(元營)으로 하여금 가람 80칸을 짓게 한 중창을 하게 된다.

이 중창은 1211년(희종 7)에 시작하여 21년 만인 1232년(고종 19)에 완공되었으며, 절이 완공되자 요세는 보현도량(普賢道場)을

개설하고 실천 중심의 수행인들을 모아 결사(結社)를 맺었는데 이것이 송광사를 중심으로 한 수선사결사(修禪社結社)와 쌍벽을

이루었던 백련사결사(白蓮社結社)이다.

 

지눌의 수선사가 돈오점수(頓悟漸修), 정혜쌍수(淨慧雙修)를 수행의 요체로 삼았던 반면, 요세의 백련사에서는 참회하여

죄를 멸하는 참회멸죄(懺悔滅罪)와 정토에 태어날 것을 바라는 정토구생(淨土求生)에 전염했고 염불선을 수행 방편으로 삼아

그 후 120년간 8명의 국사를 배출하게 되며 고려시대에 이르러 최고의 중흥기를 맞았던 것이다.

 

 

만경루..

 

만경루아래를 지나 계단을 올라서기 전에 본 백련사 대웅보전의 모습이다.

 

 

고려시대 혜일선사가 만덕사를 찾아 만세루 너머 강진만에 떠 있는 돛단배를 보며 읋었다는 시이다.

 

백련이라 이름난 절 아름답고, 만덕산은 맑기만 한데/

문은 고요히 솔 그림자로 닫혀 있어, 객이 오면 풍경 소리만 듣네/

돛단배 바다 위로 지나고, 새들은 꽃 사이를 날며 우짖으니/

오래 앉으면 되돌아갈 길조차 잊을 만큼, 인간세상의 흔적은 하나도 없네/

 

 

 

 

 

대웅보전의 현판은 18세기 동국진체의 완성자인 원교 이광사가 완도 근처 신지도에서 16년간 유배생활을 하던 중

백련사에 들러 대웅보전과 만경루의 글씨를 남겼다고 한다.

대웅전은 앞면 세 칸, 옆 면 세 칸의 팔작지붕에 겹처마로 이루어진 다포식 건축물로 1760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62년

중건했다고 한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136호)

 

 

1760년 화재가 발생했을 때도 이 불상들을 먼저 빼 냈다고 한다.

1710년에 목조로 조성된 부처님은 주불이 석가모니불, 좌협시 아미타불, 우협시 약사여래불이다.

법당내부에는 아름다운 벽화와 조각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하나 다 찾아보지는 못했다.

 

 

 

 

 

삼성당인데 마찬가지로 현판이 없다.

삼성당에는 독성탱화와 칠성탱화, 그리고 1931년에 그려진 산신탱화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삼성당은 불교가 한국의 민간신앙을 받아들여 만들어진 전각으로 만덕산 삼성당은 예로부터 큰 인물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자손들을 위해 기도를 하는 부모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산신탱화는 소화6년 일제시대때 그려진 것으로 소나무 아래 부채를 들고 있는 산신령과 까치 호랑이, 그리고 지팡이 끝에

물병을 매달고 있는 동자그림이 매우 민화적이고 친근한 느낌이 든다고...(자료출처 : 백련사)

 

 

명부전은 세상 모든 중생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며 지옥 중생들까지 구제하겠다는 원력을 세운 지장보살님을 모신 전각이다.

 

 

명부전에 모셔진 지장보살

명부전 안에는 1775년(영조 51)에 정암 즉원(晶巖 卽圓1738-1794) 스님이 지은 [시왕전중수기]현판이 있어

이 건물이 1775년경에 세워진 것을 알 수 있다.

 

 

응진당과 아직 현판을 걸지 못한 천불전

 

 

응진(應眞)이란 ‘존경 받을 만하다’, ‘공경 받을 만하다’라는 뜻으로, 나한전(羅漢殿)이라고도 하며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16나한상과 영산회상도를 봉안하고 있다.

나한이란 수행을 통하여 모든 허물이 사라지고 번뇌가 없고 자유로운 마음을 가지신 분으로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이 부처로 다시 이 세상에 오기 전까지 이 16분의 나한들에게 이 세상에 머물면서

불법을 보호하고 불자들을 구제하라는 명령을 내려 아직 이 세상에 현존하고 있다고 불가에선 이야기 한다(자료출처:백련사)

 

 

천불전은 아직 현판을 걸지 않았지만...

 

 

누구든지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승불교의 근본사상을 상징하는 전각이다.

삼신불과 삼세불, 천불, 삼천불 등 다불(多佛) 사상의 영향으로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본래 천불에는 과거천불, 현재천불, 미래천불이 있는데 이를 각각 과거 장엄겁천불, 현재 현겁천불, 미래 성수겁천불이라 하며

천불전에는 이 중 대개 현겁천불을 모신다.

현겁(賢劫)이란 불교에서 시간의 개념으로, 세상이 개벽하여 다시 개벽할 때까지의 기간을 이른다.

불경에 따르면 현겁에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 석가모니불 등 1,000명의 부처가 나타나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자료출처 : 네이버지식백과)

 

 

 

응진전에서 바라본 강진 구룡포

 

 

범종각

 

 

 

대웅전 오른편 응진당 석축아래에는 보물 제1396호인 백련사사적비가 최근 지어진 보호전각에 고풍스러운 자태로 서 있다.

높이 4.47m 규모로 용머리를 한 귀부는 고려시대에 조성되었고, 비신과 이수는 1681년(숙종 7년)에 조성되었다.

이렇게 고려와 조선 등 시대를 달리하는 사적비에는 ,,,,

 

 

                숙종 7년(1681) 당시 홍문관 수찬 조종저가 지은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석은 숙종 때 것이지만 아래위의 돌거북과 머릿돌은 고려 시대 것이다.

                정약용의 <만덕사지>에 따르면 이곳에 원래 고려의 문필가 최자가 비문을 지은 원묘국사의 부도비가 있었지만

                그 비신이 언젠가 훼멸된 후 돌거북과 머릿돌만 남았다가 나중에 이렇게 다시 비석으로 세웠다고 한다.

                수염달린 고려시대 돌거북은 아래 사진의 돌거불과 달리 여의주를 물지 않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보물인 만덕사 사적비 옆으로는 얼마 전에 조성된 듯한 사적비 하나가 한 쌍으로 나란히 서 있다.

                아마도 보물 사적비의 훼손이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여 똑같은 비문으로 만들어 놓은 듯...

 

 

만경루의 현판도 대웅보전의 현판처럼 18세기 동국진체의 완성자인 원교 이광사가 남겼다.

 

 

부도전을 찾아 보았지만 보이지를 않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부도전은 천연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된 동백나무 숲 안에는 있다고 한다.

동백나무 숲 안에는 고려, 조선시대의 부도가 곳곳에 숨박꼭질하듯 흩어져 있으며, 원묘국사 증진탑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3호인 강진백련사 원구형부도(康津白蓮寺圓球形浮屠), 대웅보전을 중수한 월인당 총신 스님의 부도,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2기의 부도가 있다고 한다.

또한 응진전 앞에 춘파당 부도, 절 입구 축대 위에 부도, 명부전 앞에 부도의 잔해가 남아 있다고...

부도전이 있는 곳은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이라 들어가 보지를 못했다.

고창 문수사의 부도전도 마찬가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단풍나무 숲에 있어 가보지 못하였기에 애석한 일은 아니다.

 

 

보고있는 것은 해태상으로 예전에는 스님들이 만경루를 선방 삼아 수행을 했지만

지금은 템플스테이 수련공간으로 쓰이고, 백일홍이 활짝 피는 날 ‘만경루에서 우리음악 듣기’등의

문화행사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고...

 

 

만경루에서 바라본 강진 구룡포..

 

백련이라 이름난 절 아름답고, 만덕산은 맑기만 한데/

문은 고요히 솔 그림자로 닫혀 있어, 객이 오면 풍경 소리만 듣네/

돛단배 바다 위로 지나고, 새들은 꽃 사이를 날며 우짖으니/

오래 앉으면 되돌아갈 길조차 잊을 만큼, 인간세상의 흔적은 하나도 없네/

라고 고려시대 혜일선사가 여기서 구룡포를 보고 시를 읊었다고 하니, 사색을 곁들여 볼까?

 

멀리 보이는 푸른 바다 티끌 없는 거울이네/
울 옆의 긴대 바람에 소리내고/
난간 앞의 그윽한 꽃 눈 속의 봄이라/

라고 조선 성종 때의 문신 김유(金紐)가 백련사 만경루에 올라 쓴 시도 있다.


 

 

해탈문을 대신하는 동백숲은 백련사을 더욱더 빛나게 하는 보물이다.
약 300m의 긴 동백숲 터널을 지나면 나오는 백련사는 이 동백터널이 끝나면서 나온다.

즉, 본전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문인 불이문은 없지만 동백터널의 끝에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佛國土)가 전개되기에

충분히 불이문(不二門)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백련사에는 주차장부터  절 입구까지 약 3천 여 그루의 키 큰 동백나무들이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천연기념물 151호로 지정된 이 동백숲은 12월 말부터 피기 시작하여 이듬해 3월 중순부터 4월 초순까지 절정을 이룬다.

정약용이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오가며 심기시작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빼어난 멋이 백련사를 더욱 더 아름답게 해 주고 있다.

간 날이 12월1일 이었지만 벌써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해 때 아닌 눈 호강을 시켜주고 있었다.

만세루에서 바라본 동백꽃 너머 구강포가 아름다운 백련사에서는 동백숲을 보전하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을 넓히기 위해 2001년 부터 동백축제를 열고 있다고...

 

 

석축을 쌓아 터를 잡은 백련사와 그 뒷산인 만덕산.

석축앞 에는 넓은 텃밭이 자리해 각종 채소가 자라고 있어 여느 절집과 다르지 않고..

 

 

백련사를 나와 동백숲을 거쳐 다산초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렇게 만덕산 입산통제를 알리는 간판이 서 있어 놀랐다.

대개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 또는 군립공원 등 국가나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공원은 겨울철 산불예방 차원의 입산통제가

매년 있지만 강진땅 백련사와 다산초당을 품고있는 만덕산도 산불예방 차원의 입산통제가 이루어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백련사를 나와 다산초당으로 가는 다산과 아암의 우정의 길을 걸어보기로 한다.

(강진여행) : 작다고 얕보면 큰일날 강진만덕산(1편)

(강진여행) : 정약용의 발길이 머문 진달래 핀 강진만덕산(2편)

 

     (글 : 포토뉴스 코리아 simpro) 트위터 ☞ http://twitter.com/huha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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